제목을 찾아라!
사하 수필공모전 당선작을 살짝 공개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사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사하의 얼굴을
만나보세요. 글에 맞는 제목을 찾으면 가려진 내용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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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식이는 우리를 수박밭으로 데리고 갔다. 꽤 넓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박 먹는 법 가르쳐 줄게.” 하며 수박을 한 통 골라 따서 바닥에 놓고 태권도 하듯 손날로 내려치자 그 크고 투박한 손에 수박은 여지없이 갈라졌다. 이어 손가락을 모아 마치 부삽처럼 빨간 속을 찔러 한 손 가득 내용물을 움켜쥐고 빼내 우악스레 입으로 가져가더니 한참 우물우물하다 푸- 하고 뱉었다. 씨만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생산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수박 먹는 방법인가? 그걸 따라도 해보고 수박씨 멀리 뱉기 내기도 하며 삼각주 평야에서 우리는 즐거운 여름 오후를 보냈다. 두식이는 상의를 말아 올려 꺼멓게 탄 배를 드러내 잔뜩 힘을 주고는 손가락으로 튕겨보라 했다. 그러자 이게 웬일, 카랑카랑 맑은 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탄탄한 촉감이 영락없이 잘 익은 수박이었다. 몇 번을 튕겨봐도 같은 느낌이었다. 수박 먹은 배가 도로 수박이 되다니.
“뒤를 봐!” 친구의 외마디에 돌아보니, 뒤편 하늘의 정중앙으로 더없이 밝은 보름달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면이었다. 하늘의 색을 양분한 낮과 밤은 조금의 알력도 없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시곗바늘의 양 끝처럼 해와 달의 자리가 뒤바뀌며, 비로소 밤의 바다가 조형되고 있었다. 밤바다는 많이 봤지만, 밤이 되어가는 바다를 본 일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난 바다가 완전한 어둠에 잠긴 이후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일몰이란 단순히 일출의 역순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단숨에 우스워졌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주점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여운은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조차. 혹, 바다를 처음 보았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분명히 존재했을 그 순간을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술한 경험이 그때의 감정을 재현해 주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덕분에 한동안 삶의 긴장은 팽팽하게 유지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르기에.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을숙도에서 머물기까지 철새들이라고 왜 아픔과 어려움의 시간이 없었을까. 우리는 그동안 똑같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던 솔직한 감정을 한 토막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시술이 실패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당신을 보면서 나도 정말 많이 힘들었어. 아이가 뭐라고 저러나 싶기도 했고. 물론 나도 아이가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나한텐 당신이 더 소중하거든!”이라며 조심스럽게 남편이 말했다. 그동안 남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니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평소 과묵한 데다 좀처럼 속마음을 꺼내놓지 않는 남편이었기에 그토록 힘들어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남편을 향해 “여보, 미안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당신 말대로 아이가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닌데.”라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남편은 “아니야. 당신이 얼마나 아이를 갖길 원했는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라며 나를 다독여 주었다.
낫개 바닷가에는 관할 사하구에서 주민을 위해 만든 여러 운동시설을 갖춘 레포츠 광장이 있다. 그리고 여러 갈래의 산책길이 있어서 걷거나 운동하며 소소한 일상의 권태를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는 휴일이든 평일이든 틈만 나면 바닷가로 나가서 걸으며 무료한 일상을 풀고 자잘한 행복을 맛본다. 바닷가로 나가면 말동무할 이웃사촌이 많아 쓸쓸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짭짤한 바다 냄새가 머리를 자극해 생동감을 주고 청아한 노래를 부르는 갈매기의 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은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고,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먼 수평선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게 만든다. 바다를 오가는 크고 작은 온갖 배들은 내 가슴에 희망이나 포부를 불어넣어 꿈 많은 사춘기 소년이 되게 한다. 내가 바닷가를 차 마시고 밥 먹듯이 자주 가는 까닭은 사실 지극히 평범한 것에 있다. 그것은 평균 수명 백 세의 초고령 시대를 맞이해서 심신을 단련하여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산자락으로 노을 색이 짙다. 조금 남은 햇살은 일렁이는 강물에 아지랑이처럼 반짝인다. 그 위로 붉은 물감이 풀리고 동양화 한 폭 같은 풍경이 서서히 열린다. 일출이 생동감이라면 일몰은 장엄함이다. 온종일 대지를 달구던 태양은 하구를 물들이는 것으로 쇠락해지고 있다. 제 소임을 끝내고 돌아서는 태양의 등은 허무한 비감보다는 숙연함을 불러일으킨다. 점점 희미해지는 노을에서 내가 가야 할 바를 추스르게 된다. 어스름한 하늘에 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태명이 ‘큰 별’이었던 손자의 초롱한 눈망울을 닮은 별이다. 다가오는 내일은 손자가 밝혀나갈 시간이다. 저 작은 별이 사방을 환히 비추는 것처럼, 손자도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눈을 닦고 귀를 열어주는 것이 노을로서의 내 소명일 것이다. 느릿느릿, 걸음걸이마저 닮은 손자가 내 손을 꼭 잡고 별을 맞는다. 세월로 노을이 된 내 어깨 위로 별빛이 내려앉는다. 콧날이 시큰해지도록 따뜻한 이 순간, 다대포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대신동 중심지에 있던 교정을 정리하고 지금의 사하구인 하단동 산 중턱으로 이사를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학교를 새로 건축하여 이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새삼 교장 선생님의 수고와 열정에 저절로 존경심과 경외감이 드는군요. 새로 이사한 학교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교정에 최신식 시설을 갖추었는데, 특히 처음 듣고 보았던 수세식 화장실과 실외 수영장 그리고 교정과 교정을 연결해 주던 구름다리 같은 건물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조성하신 울창한 숲과 곳곳에 숨겨져 있던 나무 의자와 주변의 개울들이었는데, 그 풍경은 어린 마음에도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교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오솔길과 개울을 따라 모여 웃고 떠들었고, 하교 시간에는 집에 가는 것도 잊은 채 교실 밖 구름다리에서 낙동강 일몰을 보며 모두가 시인이 된 것처럼 감성 충만한 나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