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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림 김을 아시나요?

참고

  • 《이야기 공작소 부산 : 3호 [2024] 안녕한 사하》,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2024.
  • 『역사와 자연이 숨 쉬는 사하 이야기』, 부산광역시 사하구, 2011.
  • 「낙동강 김 흉작의 원인에 대하여」, 향토문화전자대전(https://www.grandculture.net/).

영덕에 대게, 순창에 고추장, 영광에 굴비, 이천에 쌀이 있다면

장림에는 김이 있었습니다.

장림에서 본격적으로 김이 생산된 것은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낙동강 하구 쪽으로 건너와 김 양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 양식이 얼마나 잘됐는지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김 양식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933년 낙동강 하구에서 김 양식이 대흉작을 빚자
그 원인을 조사·연구하여 보고서를 쓰기도 했어요.
제목하여 「낙동강 김 흉작의 원인에 대하여」(1934).

낙동강의 자연조건을 두루 조사해 김 양식이 왜 실패했는지 알아내려 했지요.

당시 낙동강 하구에서 김 양식으로
가장 이름난 곳은 장림이었습니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서 자란 장림 김은 특히 맛이 좋았습니다.
장림 김의 독특한 풍미에 매료되면 다른 김은 성에 차지 않았어요.

“이게 장림 김이라꼬? 누굴 속이노!”

일단 김에 ‘장림’이 붙으면 잘 팔렸으므로, 장림 김을 사칭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을 본격적으로 출하하는 가을이 되면 김 보따리를 짊어진
아지매들이 길을 나섰습니다.
아지매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김을 팔았는데,
장림 김은 알아주는 특산물이라서 장사도 잘되었답니다.

하지만 장림의 김 생산은 1960년대
말까지만 겨우 이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재첩잡이가 더 성행했다고 하네요.
장림포구에서 잡히는 재첩도 김만큼 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세월은 흘러 1980년대에 장림포구 일대가 매립되고,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장림의 김 양식도, 재첩잡이도 한때의 영광을 뒤로 하고 모두 저물었습니다.

“장림 김, 맛이 어땠을까?”

이젠 다시 맛볼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장림 김.

기장 미역, 대저 토마토처럼 지역 특산물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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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가 만나는안녕한 그곳.